부산 인디 커넥트 페스티벌 2021(BIC Festival, 이하 BIC 2021)이 개최됐다.

올해로 7회째 맞이한 이 행사는 부산에서 열리는 글로벌 인디 게임 페스티벌로, 오는 9월 9일부터 11일까지 3일간 온/오프라인 형식으로 진행된다.

이 행사에는 네오위즈도 원더포션이 개발 중인 PC 패키지 게임 ‘산나비(SANNABI)’가를 들고 참가했다. 

이와 함께 행사 첫 날인 9일 진행되는 ‘BIC 컨퍼런스 2021’에 산나비 개발사 원더포션의 유승현 대표가 연사로 참여, ‘인디게임 산나비 개발 이야기’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강연에서는 ‘산나비’의 개발 비하인드가 공개됐다. 

원더포션 유승현 대표

 

‘산나비’는 사이버펑크 디스토피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2D 액션 플랫포머 게임으로 주인공의 사슬 팔을 사용해 진행하는 타격감 있는 액션과 역동적인 이동이 특징이다. 원더포션은 지난 ‘게임스컴 2021’에서 ‘산나비’를 공개한 바 있다.

강연은 담백한 개발 이야기였다. 하지만 원더포션의 경험을 곁들여 맨 땅에서부터 시작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담아냈다.

 

보통 인디게임 개발은 주변에서 팀을 모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초보 개발자들의 로망은 ‘아이디어 하나로 단기간에 게임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유승현 대표 또한 그러했다. 아이디어로 뭉친 인디게임을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 유대표의 능력치로 혼자 게임을 만들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고, 도움을 줄 팀원을 모집하기 시작했다.

유 대표는 여러 과정을 통해 마음이 맞는 팀원들을 꾸릴 수 있었다. 원더포션은 이렇게 다섯 명의 대학생들로 결성됐다.

결성된 다섯 명의 대학생들은 무엇을 만들것이냐에서부터 시작해 차근차근 단계를 밟아 올라갔다. 기획단계에서 그들이 지닌 아이디어는 많았다. 다만 보통의 개발사라면 이 과정에서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토론을 통해 최적의 아웃풋을 배출해 내겠지만 당시 원더포션에는 경험, 지식, 현실감각, 그들을 저지할 사람 등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다.

그렇게 내려진 결론은 “남들 안 하는걸 하자”였다.

스팀에 넘쳐나는 인디게임과 해외 게임들에 맞서 경쟁해야 하는데 그들과는 압도적인 개발력의 차이가 존재했다. 때문에 남들이 걷지 않은 길, 만들어질 작품의 상위호완 대체재가 존재하지 않는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뽑힌 기획이 ‘미래화된 조선’, ‘로프액션 하드코어 플랫포머’, ‘무속 신앙을 사이버 펑크로 재해석한 스토리’ 였다.

사슬 팔로 산을 타는 사슬잡이와 기묘한 영력을 가진 무당소녀를 만들었다. '아픈 과거를 가진 둘이 힘을 합쳐 비밀과 신비로 가득 찬 산을 오르는 감성 플랫포머 어드벤처를 만들자'가 ‘산나비’의 시작이었다. 

유 대표는 이런 초기 기획에 대해 “너무 장황했다. 우리는 게임개발 경험이 없었다. 아무런 위화감도 느끼지 못한 채 개발을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렇게 1년을 쏟아 나온 노력의 결과물은 기대 이하였다. 여기서 원더포션 개발진은 ‘남들이 안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다. ‘로프액션을 메커니즘으로 하는 게임은 왜 없을까?’에서 시작된 기획을 직접 개발에 옮긴 것은 좋았다. 다만 그걸 구현해내는 개발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액션 게임’은 인디게임 개발자들의 무덤이라고 한다. 로프액션 자체에는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기존에 존재하는 일반 액션 게임도 지옥의 개발난이도를 자랑하는데, 로프는 그보다 더 했다.

초기의 원더포션은 아이디어만 넣으면 기적처럼 게임이 만들어질 줄 알았다. 하지만 이는 큰 오산이었다. 구현된 액션을 테스트하고 실제로 제작하는 과정이 메인 스테이지였다. 그렸던 그림은 ‘스파이더맨’인데 정작 결과물은 ‘항아리 게임’이었다. 

개발 초기 '산나비'의 모습

 

유 대표는 ‘무속신앙’을 ‘사이버펑크’로 재해석한 스토리라는 막연한 기획으로 “어떻게든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산나비’의 메인 스토리는 인간을 데이터화하는 사이버펑크시대에 조선에서는 신내림 받은 무당의 인격으로부터 신을 추출해내는데 성공해 발생하는 이야기였다. ‘무속신앙’을 ‘사이버펑크’로 재해석한 신 감각 SF에서 조금의 살을 붙인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뼈대에 불과했다. ‘스토리’만 고려하고 ‘텔링’은 고려하지 않았다.

주인공은 어떤 인물인지, 주변 인물은 어떤 인물인지, 스토리가 어떻게 이어지는지 등 관련된 서사가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디어만 있고 실제 이야기 가공은 생각하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다.

‘스토리’가 아니라 ‘텔링’이 중요했고, 이를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감당할 수 없는 수준까지 걸어온 상태였다.

‘로프액션’과 ‘스토리’라는 산나비의 핵심 기획을 세우는데 한 달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점 알아차리기까지는 1년이 넘는 시간이 소요됐다. 유 대표는 가장 단순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건 문제가 되는 부분을 전부 고치는 것.

“조작감은 좋아질 때까지 다듬자”라는 생각으로 하나하나 뜯어 고치기 시작했다. 문제가 되는 모든 상황에 해답을 새로 만들어야 했다. 이는 ‘산나비’의 조작방식이 일반적이지 않은 로프액션을 채용했기 때문이다.

스토리는 더 문제였다. ‘산나비’는 기본적으로 시작부터 ‘Story-Driven’게임으로 게임 배경부터 캐릭터, 메카닉까지 모든 것이 스토리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따라서 고치고 싶다고 스토리만 달랑 갈아엎을 수 있는 게 아닌 상황이었다. 그래서 또 다시 나온 해결책은 ‘무엇을 지울 것인가’보다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에 초점을 맞춘 뒤 감당할 수 있는 부분만 남기고 전부 삭제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남은 키워드가 ‘조선, 사이버 펑크, 로프 액션, 플랫포머’였다.

‘SF 조선’이라는 배경은 ‘사이버 펑크 조선’으로, ‘사슬잡이(산지기)’는 ‘퇴역 군인’으로, ‘애기 무당’은 ‘천재 해커’로 둔갑했다.

 

뿐만 아니라 아트, 배경 오브젝트, 기믹, 전투, 재미 등 다른 모든 것이 문제였다. ‘산나비’는 정밀 프랫포머를 목표로 하던 게임이기 때문에 초기계획에는 전투 자체가 상정되어있지 않았다. 그런데 그렇게 밀고 나가자니 조작이 너무 어렵고 재미도 없고 난이도 조절도 어려웠다.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의 커다란 기계팔을 가지고 싸우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했다.

때문에 ‘액션 플랫포머’로 노선을 변경했다. 그럼에도 본질은 플랫포머로 고정시켜 이동이 핵심인 시스템을 유지하고 공격을 위한 공격은 최대한 배제했다. 더불어 히로인 또한 전투 능력이 없고 계속 신경 써줘야 하는 초기 기획단계에서 벗어나 ‘바이오쇼크’의 엘리자베스처럼 알아서 잘 따라다니고 능력까지 있는 조력자로 탈바꿈시켰다. 신경 쓰지 않아도 플레이어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한 것.

 

이렇게 게임을 통으로 뒤집어엎은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고칠 수 있다는 신념으로 모든 것을 고쳐냈다.

위의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듯 ‘산나비’는 준비된 게임이 아니었다. 당시의 원더포션은 개발 경험이 없어 게임을 전부 고치는 것이나 게임을 처음부터 다시 만드는 것이나 똑같이 힘들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때문에 하나하나 박치기 해가며 배웠다.

유대표는 지금까지 쭉 개발할 수 있던 이유에 대해 “운이 좋았다”라고 표현했다. 아무리 인디게임이라도 개발을 위해 필요한 능력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그렇게 능력이 있는 사람은 보통 회사에 입사할 확률이 높았다. 따라서 이상적인 팀을 꾸리려면 ‘능력은 있는데 취업은 안 하는’ 사람들을 모아야 하는데, 유 대표의 말을 빌리자면 이는 ‘환상의 포켓몬’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원더포션은 환상의 포켓몬이 다섯 명 모인 개발사다. 

또한 이 자리에 서기까지 팀원들이 포기하지 않은 다른 이유는 용감했기 때문이다. 유 대표는 “게임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았다면, 우리가 지금 만들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면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밝혔다.

개발방향이 잘못 됐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팀이 해산될 확률이 높다. 이는 게임을 포함한 모든 기획과 개발이 동일하다. 다시 고치기나 새로 만들기나 노력의 총합이 큰 차이가 나지 않기 때문에 지쳐 포기하게 되는 것.

하지만 원더포션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전부 다’ 고치려 했다. 고치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모르기도 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대단히 용감한 선택이었다. 

그렇다면 이렇게 무리한 기획과 무식한 강행돌파가 좋은 것일까? 유 대표는 “절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매우 위험하다.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이런 개발팀도 있구나 정도로 봐주시면 더욱 좋을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맨땅에 헤딩으로 시작했던 대학생 다섯 명의 게임 개발기는 NDM을 거쳐 네오위즈와 퍼블리싱 계약에 까지 도착했다. 크라우드펀딩 사이트 텀블벅에서는 모금을 시작한지 일주일도 되지 않아 목표 금액 500만원을 훌쩍 넘긴 약 2800만원이 모이기도 했다.

유 대표는 “쉽지는 않았지만 지금까지 개발 했으니 출시까지 꿋꿋하게 가보겠다”는 소감을 밝히며 연설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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