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가 스팀에서 300만 DAU를 기록하며 최고의 주가를 올리고 있을 무렵, 자금적으로 전혀 아쉬울 것 없던 크래프톤에 왕서방이 돈 보따리를 들고 크래프톤을 찾아왔다.

무려 5,000억원이었다. 결코 적지 않은 돈이었다. 게임이 잘 나가서 현금도 두둑한데, 엄청난 양의 현금을 들고 중국에서 찾아왔으니 받을까 말까를 두고 당시 회사는 꽤나 고민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지금 글로벌 1위 게임사 텐센트는 배그의 게임사 '크래프톤'의 2대 주주가 됐다.

크래프톤의 5% 이상 주주 중에서는 장병규 의장이 16%, 텐센트 산하 이미지프레임투자가 15%의 주식을 가지고 있다. 별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장 의장의 특수관계법인인 밸리즈원의 주식 6.4%를 합치면 23%여서 1대 주주 자리에는 별 영향이 없어 보인다.

텐센트가 5천억 원의 보따리를 들고 왔을 그 무렵이 2018년으로, 최근 크래프톤의 시총을 20에서 30조로 잡고 있으니 텐센트는 수십 배의 잭팟을 터트린 셈이고, 아쉬울 것 없었던 크래프톤도 3년만에 수십배로 덩치를 키운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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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래프톤의 슬로건은 '개발 명가'다. 덩치는 퍼블리셔보다 훨씬 크지만 좋은 게임을 개발하겠다며 '개발사'임을 고집하고 있다. 개발 만을 위해 그렇게 큰 돈이 필요하지는 않았을 것이고, 과연 크래프톤은 그 돈을 어디에 쓰려고 투자를 받았을까? 이 부분은 크래프톤이 상장 이후 선보일 성장 엔진과도 연관성이 있다.

지난 2월 크래프톤 김창한 대표는 사내 소통 프로그램인 크래프톤 라이브 토크(KLT)를 통해 ‘제작의 명가’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한 방향성과 변화를 전 직원에게 소개했다.

이날 발표된 것 중 가장 큰 변화는 '프로젝트 중심'이 아닌 '인재 중심'으로의 변화다. 크래프톤은 대졸 초임 초봉이 6,000만원으로 업계에서 가장 높은 연봉을 제시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김창한 대표가 직접 직접 참여하는 ‘PD 양성 프로그램’도 신설하는 등 '인재 중심'으로 회사의 방향성을 틀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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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제작에 대한 '장인정신'을 강조하는 홈페이지 메인 이미지

그간 '배틀그라운드'가 워낙 출중했기에 상대적으로 다른 프로젝트가 초라해 보이는 면이 있긴 했다. 실제로 세상밖에 나오지 못하고 묻혀버린 게임도 꽤 있다. 그래서 좋은 인재 뽑아서 잘 가르친 다음, 경쟁력 있는 게임을 제작하겠다는 것이 회사의 목표다.

사실 크래프톤은 '강남 졸부'의 느낌도 있다. '배틀그라운드' 때문에 갑자기 국내 4위의 게임사가 됐으니 당연히 그런 말을 들을 수도 있다. 아울러 '배틀그라운드'의 성공을 두고 크래프톤의 개발력이 좋아서라기 보다는 해외에서 좋은 인재를 데려왔기에 가능했다는 분석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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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그 개발자 브랜든 그린(Brendan Green)


그렇다고 크래프톤이 개발력이 전혀 없는 시시한 회사는 아니다. 크래프톤의 시작이 2007년 '리니지3' 의 개발을 맡았던 박용현 실장(현 넷게임즈 대표)과 장병규 의장이 같이 설립한 것이 크래프톤의 전신인 블루홀스튜디오이기 때문. 당시에는 대한민국에서 게임을 만드는 기술의 정점에 있던 회사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

배그로 인해 성공을 이룬 지금도 김창한 대표나 장병규 의장은 시작부터 끝까지 '제작의 명가'를 외친다.

김창한 대표는 “크래프톤은 창업시점부터 제작의 명가를 만든다는 비전과 글로벌 시장에서 성공한다는 목표로 한국에 없는 특별한 게임회사를 표방해왔다.”고 했다. 이 목표는 이미 이뤘다.

이어 “오랫동안 게임 제작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무엇을 제일 먼저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고, 올해부터 인재에 대한 적극적인 투자와 도전을 통해 구성원과 회사가 함께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데 집중하기로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이것은 크래프톤의 미래다. 이미 스팀 1위를 찍고 있던 시점에서 더 높이 오를 곳이 없어 안주할 수 있었음에도 텐센트의 돈을 받고, 투자자들의 돈을 받으며 더 큰 성공을 하겠다고 목표를 정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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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 중심의 경영을 내세운 김창한 대표


그렇다면 투자자의 관점에서 크래프톤에 투자를 해도 될지 알아볼 차례다.

최근 크래프톤 공모가를 두고 "시총이 엔씨보다 높은 것이 말이 되냐"며 고평가 논란이 한창이다. 반면 그렇지 않다고 보는 시선도 있다. 크래프톤이 이미 '글로벌' 기업이고 '배그' IP가 가진 기대감 때문이다.

배그 하나밖에 없다면 단일 게임 흥행을 두고 단점으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배그 IP는 국내 업계가 배출한 여러 흥행작과는 결이 다르다는 주장이다.

사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는 중국에서, 엔씨의 '리니지'는 한국과 대만에서, 넷마블의 '마블퓨처파이터'는 북미유럽권에서 인기가 있다. 지역이 한정적이지만 배그는 해외 매출 비중이 높아도 70%대인 3N보다 훨씬 높은 94%다.

지난 1분기 실적에서 해외 매출이 가장 높았던 기업은 크래프톤(4390억원), 넷마블(4023억원), 넥슨(4007억원)의 순이었다. 얼마 차이는 없지만 국내 게임사 중 해외 매출 비중과 금액이 가장 높다는 점에 주목할 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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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크래프톤 매출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작년 배틀그라운드의 해외 모바일 버전인 펍지 모바일(PUBG Mobile)은 매달 1천억 원을 벌어들인 것으로 파악된다. 그리고 올해 상반기 매출이 1.5조 에 달한다는 자료가 나왔다. 그렇다면 올해 추산만 3조다. 물론 중국의 '화평정영'이 포함된 수치다.

그리고 센서타워의 지난 6월 안드로이드 마켓 매출 자료 기준, '포켓몬고'와 비슷한 수준의 매출이 나오고 있다. 아울러 '원신'보다 더 많은 매출을 올리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또한 비교 대상 게임 중 가장 다운로드 수가 많다는 점도 긍정적인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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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이드 6월 글로벌 매출=센서타워 자료


그리고 국제화 수치에서 '배틀그라운드'는 70점, '리니지M'은 17점으로 큰 차이를 보인다. 3N의 타이틀과 결이 다르다는 것이 여기서 입증된다. 이 점수가 높다는 것은 글로벌에서 골고루 즐긴다는 의미다. 글로벌 게임으로 자리잡은 '포켓몬고'와 '원신'은 국제화 점수가 각각 86점과 78점으로 높다.

'배틀그라운드'가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이유가 '포트나이트'다. '포트나이트'는 글로벌 게임사의 절반을 차지하는 압도적인 '언리얼 엔진'을 기반으로 기존 세력이었던 '배틀그라운드'를 위협하며 전세계에 가공할만한 위세를 떨쳤다.

특히 서구권을 중심으로 인기를 얻으며 동양권까지 장악하며 지존이 되려는 찰나, 애플 등과 수수료 비율을 문제삼아 마켓 하차의 길을 선택한다. 덕분에 배그는 기가 펴졌고, 다시 동 장르에서 글로벌 1위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운이 크래프톤에게 있었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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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중국이다. 크래프톤은 중국 화평정영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얘기해 오다가 최근 증권 신고서를 통해 텐센트로부터 기술 수수료를 받고 있는 사실을 인정했다. 이것이 긍정적 요소가 되지는 못했다. 1.6조가 넘는 주요 매출처가 밝혀졌을 뿐, 중국의 정치적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이 더욱 부각됐다.

지난 5일 텐센트는 안면인식 기술을 활용해 미성년자가 게임을 하면 바로 로그아웃을 시켜버리는 '영점순항(零点巡航, Zero Cruise)' 기능을 선보였다. 그 정도로 중국 정부에 충성을 다하는 모습이다. 넥슨의 '던전앤파이터M'이 못 나오고 있는 것과도 맥락을 같이 한다.

크래프톤 매출의 대부분이 중국에서 나온다고 가정한다면, 그나마 중국에서 버티고 있다는 점이 장점일 수도 있지만, 반대로 정치적 이슈 때문에 '그마저도 없어진다면' 하는 우려가 있을 수 있다. 더 이상 안심할 수 없는 이유다.

그래서 찾은 답이 인도다. 크래프톤으로서는 기회였다. 때마침 인도와 중국이 정치 이슈로 텐센트가 서비스하던 펍지 모바일이 퇴출을 당했고, 크래프톤은 태극 마크를 달고 인도 버전을 만들어 인도 입성에 성공했다. 중국과 같은 14억대 인구를 지닌 이 곳은 가장 성장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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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버전 출시


한편 크래프톤은 단순 인도 버전 출시에 그치지 않고 대대적인 투자도 함께 진행 중이다. 3월 인도 e스포츠 기업 노드윈 게이밍에 약 255억 원의 투자를 단행했고, 4월에는 인도에 코로나19 대응 의료품 지원을 위해 기부를 했으며, 6월에는 인도 게임 스트리밍 기업 로코에 약 100억원의 투자를 단행했다. 그리고 지난 2일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도' 버전을 출시, '가레나 프리파이어'에 이어 인도 구글 매출 2위에 올라선 상황.

한국 모바일 게임 시장은 2024년 4.2조, 인도 모바일게임 시장은 2025년 4.4조가 될 것이라는 통계가 있다.

가장 큰 시장인 중국은 중국대로, 가장 성장 전망이 높은 인도는 인도대로 인구 약 30억 명에 가까운 두 나라에서 '배틀그라운드'가 최고의 게임으로 자리잡을 가능성이 있다.

몇년 전 텐센트의 돈 보따리를 필요없다며 물리쳤다면, 기업 공개를 꺼려하며 상장을 추진하지 않고 현재에 안주했더라면, 결코 시종 20조, 30조를 넘보는 지금의 크래프톤은 없었을 수 있다.

주식의 가격에는 미래가치가 반영된다. '개발 명가', '최고의 인력 대우', '글로벌'에 방점을 찍고 있는 크래프톤의 공모가는 높을 수 있으나, 상장 이후 가치가 만영될 크래프톤의 미래는 결코 낮고 어둡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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